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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노년의 이유있는 시작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칠암도서관_사서 이지아
독자대상 -
서명 다시 쓸 수 있을까
저자/역자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지음; 신견식 옮김
출판사 어크로스
페이지수 196쪽
출판일 2019. 3. 5
등록일 2019년 05월 04일

노년의 이유있는 시작

테오도르 칼리파티데스. 발음은 어렵지만 어딘가 운치 있는 이 이름은 그리스 태생 스웨덴 작가의 이름입니다. 그의 나이는 77세, 어쩌면 지금은 더 나이를 먹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무려 40권 이상의 책을 출판하고 작가는 자신의 어딘가가 완전히 소진된 느낌을 받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가 은퇴할 때라고 결정합니다. 쓰지 않는 것보다는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작가 테오도르에게 쓴다는 행위는 자기라는 인식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삶의 목적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쓰는 것을 그만두는 행위는 생각 이상으로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거기다 수십 년간 일터였던 작업실을 청산하고 집에 머무르는 작가는 자신이 아내의 공간을 침범하고 있는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되었다고 느낍니다. 평일 낮 시간, 집에 있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거추장스럽기만 합니다. 집에도 자신의 방이 있었지만 그 방은 오직 잠을 자는 데 쓰입니다. 테오도르는 작업실을 없애면서 책 읽고, 글 쓰고, 담배 피우던 공간을 잃어버렸습니다.

작가가 아닌 담에야 이런 유의 경험과 느낌들이 거창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시절부터 몇 십 년간을 해오던 어떤 행위, 자신의 업(業)을 은퇴할 시기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만한 문제입니다. 제가 아는 이야기에서도 65세까지 해온 치과의사 일이 지긋지긋하다고 이제 노년을 유유자적하게 보내겠다며 은퇴한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는 금세 다시 본업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그의 아들이 왜냐고 이유를 물으니 의사 누구씨라는 이름을 잃고 나니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다고 대답합니다.

일이란 이렇게 사람에게 생각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일상의 반복되는 의무요, 권리입니다. 그런데 어떤 일은 기계처럼 반복적이고, 노동에 대한 보수도 적어 계속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느낄 수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작가는 개개인의 일이라는 것은 그 세속적 가치를 걷어내더라도 그것이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친구를 통해 깨닫습니다.

<날마다 똑같이 되풀이되는 일상이었다. 우선 꽃을 사 와야 했고, 그 다음에는 가판대를 세우고 상품을 펼쳐놓아야 했다. 이후로는 최대한 많이 팔아치우는 게 일이었다. 손님을 알아보고 수다를 떨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볍게 농지거리도 주고받아야 했다. 저녁이 되면 물건을 들여놓고 하루 매출액을 결산한 다음에 은행 계좌에 입금한다. 이튿날이 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p. 28>

테오도르의 실직한 친구가 광장에서 가판대를 운영하며 일하는 하루입니다. 그런 하루가 다음날 그리고 또 다음날 매일 반복됩니다. 테오도르는 친구의 삶이 바윗돌을 언덕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갔다가 거기서 떨어뜨리고 다시 또 밀고 올라가야 한다는 천형을 받은 시시포스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자네는 시시포스가 됐구만.” 이 한마디에 친구는 꽤 충격을 받아 하루 일을 쉬어봅니다. 공원도 갔다, 카페도 갔다 유유자적한 하루를 보냅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유유자적이 즐겁지 않습니다. 공원은 시끄럽고, 멍하니 벤치에 앉아 오가는 사람을 보노라니 비관적인 생각만 꾸물꾸물 올라옵니다. 결국 포기하고 다시 자신의 가판대로 달려가서 일을 시작했더니...... 오, 솔 레 미오! 밀려오는 기쁨이여.

이번에는 거꾸로 친구가 테오도르를 한 수 가르칩니다.
“이보시오, 내 친구야. 어쩌다 보니 작가이자 철학자가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시시포스 신화는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요. 제우스는 벌을 내린 것이 아니었다니까요. 그 반대죠. 자비를 베풀어준 거라고요. 일이 없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그것은 77세의 지성적인 작가 테오도르가 칠십 평생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그 생소한 가르침에 크게 공감합니다. 40년을 커피를 끓이고,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컴퓨터를 켜서 날마다 써 내려가는 것 자체가 그의 삶이자 영혼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 작가는 다시 쓰기 위해 연어처럼 자신의 과거로, 그 태생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작은 책은 77세의 나이에 더 이상 아무것도 쓸 수 없다고 선언한 작가 테오도르의 여행기입니다. 이 여행의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내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대답은 '떠나라’였다. 그래서 떠났다. 일흔다섯 살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똑같은 질문을 앞에 두고 있었다. “나의 여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이제는 이런 대답이 머릿속에 자주 맴돌았다. '돌아가라.' -p. 91~92>

앞서서 작가는 그리스 태생의 스웨덴 사람이라고 했지요. 과거 테오도르가 지중해 그의 나라를 떠나 북유럽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왔으니 떠나라는 내면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겠지요. 이제 돌아가라는 다른 명령으로 다시 길을 찾아 떠나는 테오도르는 어디로 갈까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오랜 전설의 땅, 지금은 유럽연합 위기를 가져온 원인 중에 하나였던 국가부도 사태의 불명예 국가 그리스, 그것도 여신의 이름을 부여받은 아테네였습니다. 그의 고향은 그리스 아테네였습니다. 책의 전반부는 작가의 과거 이야기입니다. 이른바 기억의 회귀이지요. 정작 실제로 아테네로 떠난 것, 몸의 회귀는 125페이지에 이르러서야 시작됩니다. 작가의 떠남은 단지, 어떤 땅을 향한 물리적 장소의 이동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민은 부분적인 자살과 같다. 정말 죽는 것은 아니지만 내면의 많은 부분이 죽는다. 특히 언어가 그렇다. 그래서는 스웨덴어를 익힌 것보다는 그리스어를 잊어버리지 않은 것이 더욱 뿌듯하다. -p. 84>

<고국을 떠나기 전에 애인이었던 마리아의 편지 몇 통이 서랍 안에 들어 있었다. 편지들을 천천히 읽었다. 청춘의 사랑을 추억하려는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그리스어를 만끽하기 위해서. 왜냐하면 그녀는 내 머릿속에 지뢰를 숨겨놓았기 때문이다.
“돌아와요. 우리는 산책할 길이 많이 남았잖아요.”우리는 더 이상 연인이 아니었지만 마리아는 그렇게 말했다. -p. 85>

작가가 떠나온 것은 그리스뿐만 아니라 그리스어, 옛사랑, 고향 사람들, 어린 시절..... 그 모든 것이었습니다. 이민은 어떤 ‘자살’과 같다고 했기에 테오도르는 새로 태어나 스웨덴인으로서 살아온 겁니다. 그래서 그의 회귀는 다시 그리스어를 쓰면서, 그리스어를 쓰는 사람들과 만나고 거기서 맞이하는 사건들을 통해서도 계속 됩니다.

그래서 테오도르는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을 다시 찾았을까요? 다시 쓸 수 있을까라는 책의 제목은 이 책의 존재로써 그것에 대한 답을 선사합니다. 돌아가는 여정들이 어떻게 다시 작가의 길을 찾도록 이끌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의 내용입니다. 그래서 이 작은 책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다시 과거를 돌아봄’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 말해줍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우리에게 낭만적 여운을 선사합니다.

77세의 나이, 어쩌면 지금은 80대에 들어선 노작가, 더는 일을 하지 않아도 생계가 보장되는 노년의 그가 꼭 일을 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작가는 어떤 친구 이야기를 할지도 모릅니다. 정비소를 하던 작가의 친구는 어느 날 자기의 정비소를 팔아버리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바로 아프기 시작합니다. 그의 몸은 기민하게 그가 이제는 일을 할 필요가 없으니 이제 좀 아파도 된다는 듯이 여기저기 통증 신호를 보냅니다, 머리는 어질어질하고 혀도 굳어 말이 어려워집니다. 테오도르와 만났을 때 친구는 이제 곧 좋아질 거라고 하지만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고 작가는 술회합니다. 그래서 그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결국 우리 인간은 나이를 먹는다. 그러니 일을 하면서 나이를 먹는 것이 가장 좋다. -p. 91>







<목 차>
1부 작업실
아예 쓰지 않는 것보다도 후지게 쓰는 것이 두려웠다 -011
일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는 존재가 된다 -020
현기증 -034

2부 아내의 집
아내 집에 초대받지 않은 손님 -049
‘루터’ -056
이제 어디로 가지? -060
오늘밤 죽는다면 어떻게 될까 -075
돌아와요. 우리는 아직 산책할 길이 많이 남았잖아요 -084

3부 여름 별장
작가가 자기 글을 감싸기 시작할 때 -095
무리를 놓친 철새 -113

4부 그리스 아테네
키스 없는 사랑, 사랑 없는 키스 -125
영원을 추구하는 것은 한물갔다 -132
내가 그리스어로 쓰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 -137
백열여덟 살 여자 -147
쓰디쓴 맛 그리스 -151
무화과, 포도, 초콜릿, 책-164
무엇이 또는 누가 나를 나 자신으로 되돌려놓을까-177
아이스킬로스의 말-182
쓰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인 것처럼-187
50년 만에 그리스어로 처음 쓴 책-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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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09:09: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