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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천재적인 SF소설 『종이 동물원』에 반하다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칠암 도서관_사서 이지아
독자대상 -
서명 종이 동물원
저자/역자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출판사 황금가지
페이지수 568쪽
출판일 2018-11-29
등록일 2019년 02월 03일

천재적인 SF소설 『종이 동물원』에  반하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책은 『종이 동물원』입니다. 이 작품의 작가는 중국계 미국인, 켄 리우입니다. 좀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에는 아서 클라크가 있습니다. SF 팬이라면 다 아는 유명한 이름, 아서 클라크는 인공위성과 인터넷 등을 그것이 등장하기 전부터 자신의 소설에 묘사하고, 동방박사를 인도한 별이 초신성이었다는 관점에서 신의 우연한 선택이 어떤 파국을 가져왔는지 비극적이고 섬뜩한 서정을 엮어낸 SF 계의 전설입니다. 그 대단한 아서 클라크가 받은 휴고상을 켄 리우의 이 작품, 『종이 동물원』도 받았습니다. 2011년에 발표된 종이 동물원은 이듬해 2012년, SF 판타지 문학계의 최고의 상인 휴고상뿐 아니라 네뷸러 상, 세계환상문학상까지 독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배경만 전해 듣고 그를 만났는데, 알고 보니 내가 아는 것 이상으로 멋진 사람이어서 훅 빠져버리신 적이 있습니까? 이 책이 저에게 그런 사람을 만난 것 같은 놀라움을 선사했습니다. 『종이 동물원』을 읽다 보면 이런 말이 터져 나옵니다. 맙소사,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지?

현대는 누구나 자기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고 책으로 나눌 수 있는 작가의 시대입니다. 멋진 시절입니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듯, 책이 넘쳐나는 대신에 한 편으로는 문학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신변잡기식의 책들에 식상해가기도 합니다. 그럴 때 이 작품, 종이동물원은 뛰어난 필력으로 독자들을 휘어잡습니다. 그렇다고 켄 리우가 스타처럼 등장한 신예 작가는 아닙니다. 10년이 넘게 습작을 하고 수많은 출판사들로부터 작품을 거절당해 슬럼프를 겪기도 한 노력파입니다. 그러한 좌절을 통한 경험의 성숙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작가가 얻은 것은 천재의 펜(혹은 키보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종이 동물원』에 실린 단편들은 앞전에 얘기한 아서 클라크의 작품들과 비슷한 성격이 있습니다. 거친 상상 대신에 사실과 과학에 기초하여 정교한 상상의 그물을 짜서 그 위에 인물과 사건을 배치하여 세련된 기법으로 이야기의 세계를 구축합니다. 이야기의 기법이 외형이라면 이야기 속에 탄탄히 자리 잡고 있는 작가의 올곧은 사상은 독자를 감동 시킵니다. 모닝 포스트지에서는 『종이 동물원』을 읽기 전에 눈물을 닦을 화장지를 준비하라고 했는데, 이 어이없는 경고가 저에게도 들어맞았습니다. 몇몇 작품들은 읽다보면 코끝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차오릅니다. 과거는 현재로, 현재는 또 미래로 이어지는 시간의 연속선에서 이야기는 진실의 힘으로써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나저나 이 책은 외형부터 멋진 책입니다. 표지에는 빛바랜 살구색 종이 호랑이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이 책을 『종이 동물원』이 아니라 자꾸 『종이 호랑이』라고 읽는 실수를 합니다. 책 제목과 각 단편의 제목마다 영어 원제가 캘리그라피로 배경처럼 새겨져 있습니다. 영어를 좀 하시는 분이라면, 영어 원제와 한글 번역을 비교하며 번역의 수준에 감탄하는 재미를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두근두근, 이제 책 내용 이야기를 해볼까요?

앗, 잠깐 기다리세요. 결정적인 내용은 말하지 않겠지만 내용의 일부를 미리 알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으셨다면 여기부터는 패스하고 어서 책을 펼치세요. 그럼 됩니다. 자, 그런 분들은 이제 가셨지요? 이제 책 속의 이야기를 진짜 해볼까요?
『종이 동물원』에 실린 단편들은 장르적으로도 다양하면서 여러 가지 재미와 감동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한 편 한 편마다, 아껴뒀다 하나씩 까먹는 스위스 초콜릿을 먹는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표제작 「종이 동물원」은 엄마가 중국인, 아빠가 미국인인 남자 잭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단편은 SF보다는 판타지입니다. 엄마가 만든 종이 동물들이 엄마의 숨결을 받아 당연하게 살아 움직입니다. 이야기 내에서 그것은 조금 신기한 재주 정도로 치부됩니다. 잭은 자라면서 중국인 엄마의 배경-미국인 아빠와 이웃들의 관점에서-을 알고 엄마를 경멸하며 멀리하게 되지만, 훗날 종이 호랑이 라오후를 통해 엄마의 진짜 이야기를 듣습니다. 중국의 문화혁명을 배경으로 연약한 어린 소녀에게 닥친 비극, 그리고 그 소녀에게 자신의 존재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깨닫는 이 이야기는 역사의 큰 줄기 속에는 수많은 개인의 비극이 점철되어 있고, 그것은 현대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깨달음을 줍니다.

「천생연분」은 제목의 예스러움과 다르게 진짜 SF입이다. 그리고 익숙한 현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모모 폰의 ‘시리’가 생각나게 하는 ‘틸리’라는 인공지능 개인 맞춤화 비서. 처음에는 영화 「그녀」를 생각하며 ‘틸리’와 주인공의 로맨스가 펼쳐지겠다고 헛다리를 짚었는데 이야기는 점점 그럴 듯하게 나아가 반전을 넘어 공포영화의 찜찜한 결말처럼 끝납니다. 「천생연분」에 등장하는 가상의 회사 센틸리언의 대표이사가 하는 말이 흥미롭습니다.

이제 인류는 사이보그입니다.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의식을 전자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자아를 두뇌 속으로 다시 욱여놓기가 불가능합니다. 당신들이 센틸리언을 무너뜨려 봤자 금세 다른 대체재가 등장해서 우리 자리를 차지할 겁니다. 이미 늦었다, 이겁니다. 거인은 이미 오래 전에 램프에서 탈출했어요.
p.71

켄 리우의 재능 중 하나는 작가가 중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에 함몰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켄 리우는 자유롭게 미국인, 중국인, 일본인 등의 정체성을 넘나듭니다. 「파자점술사」에서는 1960년대 타이완 섬에 사는 미국인 소녀 릴리를 화자로 내세웁니다. 딸을 사랑하는 평범한 소녀의 아버지가 릴리의 친구인 노인과 소년에게 지극히 직업적으로 지독하게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릴리의 관점에서 선보입니다. 작품의 말미에 freeze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릴리와 영혼이 나누는 대화와 어린 소녀의 슬픔과 결심을 드러내는 무심한 한 마디가 절묘했습니다.

제가 가장 감동받은 이야기는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입니다. 제목도 참신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 기법이라는 소설의 형식도 새롭습니다. 무엇보다 SF계의 고전적 화두인 타임머신 이야기를, 과학적 관점에서 새롭고 그럴싸하게 순전히 상상력으로 엮어내는 작가의 지력과 필력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이 단편은 일본 정부가 그렇게 부정하는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그 이상의 고통을 같은 인간에게 저지른 731부대가 중심 소재입니다. 가상의 입자, 뵘기리노 입자로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여 체험할 수 있을 때 역사에 대한 분란은 그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렇다고 진실을 말하는 자가 항상 승리하는 것은 아닙니다. 뵘기리노 입자를 발견해서 731 부대의 만행을 알리고자 했던 박사 에번은 희생양이 되고, 그의 아내 기리노 박사는 살아남아 731 부대와 얽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으며 에번의 연구가 어떻게 진일보했는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에번은 자기가 731부대 희생자들의 기억을 희생시켜 그들의 진실이 우리 세계에 남긴 흔적을 영원히 지워 버렸다고 생각하면서 죽었습니다. 모든 게 헛수고였다고 생각하면서요. 하지만 에번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에번은 잊어버렸던 겁니다. 설령 뵘기리노 입자가 소멸한다 해도,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소리 없는 용기가 담긴 순간순간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실제 광양자는, 여전히 저 우주에 남아서 빛의 구체가 되어 우주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간다는 사실을요.
별하늘을 올려다볼 때, 우리는 쏟아지는 별빛에 물듭니다. 그 빛은 핑팡의 마지막 희생자가 죽은 날, 아우슈비츠에 마지막 열차가 도착한 날, 마지막 체로키족 원주민이 조지아주를 떠난 날 태어났습니다.
p.558

이 책의 매력을 어떻게 다 설명할까요?
단편 「레귤러」를 읽으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하드보일드 영화를 보는 것 같습니다. 냉혹한 살인이 시작되고 살인자를 저지하기 위한 격렬한 액션과 과거의 상처에서 기인한 진한 감정이 분출되었다 그 묵은 감정과의 화해와 함께 뜨거운 감동으로 끝납니다.
「송사와 원숭이 왕」에서는 엉뚱하게도 중국 고전의 주인공 손오공이 나옵니다. 손오공은 현대로 치면 조현병 망상증 환자로 영악하게 살아가는 주인공 전호리의 망상이 되어 나옵니다. 손오공과 전호리의 대화는 우리 고전 소설같은 해학성이 철철 넘칩니다. 그러나 작품의 방향은 기대와는 다르게 영웅의 서사시로 끝납니다. 평범한 사람이 결정적 순간에 수많은 망설임, 비겁한 속삭임과 두려움을 뿌리치고 역사의 진실을 지켜내는 모습이 감동을 줍니다. 이 손오공도 살짝 미친 전호리의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나오다, 양심의 실체가 되는 변화를 거듭합니다. 작품의 대단원에서 전호리에게 절을 올리는 장면에서는 장엄한 전율을 느낄 정도였습니다.

자넨 특별한 선택에 직면한 평범한 사람이었어. 그때 자네가 한 선택을 후회하나?
아니, 전호리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고통 때문에 의식이 흐려지고 이성의 빛이 천천히 꺼져 가는 동안, 굳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코 후회하지 않아.
그 이상 뭘 더 바라겠나. 미후왕(獼猴王)손오공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전호리 앞에 허리 숙여 절을 했다. 황제 앞에서 굽실거리는 절이 아니라 위대한 영웅에게 바치는 경배였다.
p. 469

켄 리우 작가를 인터뷰한 한 기자는 작가의 역사적인 비극의 묘사가 너무 잔인하여 초현실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럴 때 켄 리우는 단호하게 그것이 바로 현실이었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의 이야기에는 읽고 나면 그 여파가 만만치 않은 잔인한 묘사들이 있습니다. 「송사와 원숭이 왕」에서 작가가 직접 번역해 소개한 역사서 『양주십일기』에는 실에 꿰인 진주처럼 밧줄에 줄줄이 묶여가는 부녀자들과, 땅바닥 이곳저곳에 마치 쓰레기처럼 떨어져 있다 그대로 밝혀 죽어 뇌수와 내장이 터져 나오는 아기들이 나옵니다.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에 나온 731 부대의 피해자들 이야기는 마음을 괴롭힐 정도로 충격적이었습니다. 기리노 박사의 목소리로 전하는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소리 없는 용기가 담긴 광양자’는 정말 존재할까요? 과거는 과거로 그냥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저 우주에 남아서 빛의 구체가 되어 우주 공간 속으로 퍼져 나간다는 사실은 과학적 사실일까요, 켄 리우의 믿음일까요?
무엇보다 작가의 이 창작활동이야말로 바로 과거를 사라지지 않고 존재하게 하는 자양분이 되겠지요.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 판타지 과학 소설의 형태로 역사성을 갖추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를 쓰는 대단한 작가, 켄 리우의 다음 작품이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종이 동물원』은 한국에서 출판된 켄 리우의 첫 번째 작품입니다. 켄 리우의 ‘단편 선집 1·2’, 장편 ‘민들레왕조기 1·2.3’이 곧 출판될 예정이라고 하니 지금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봐야 할 것 같습니다.



<목차>
머리말
종이 동물원
천생연분
즐거운 사냥을 하길
상태 변화
파자점술사
고급 지적 생물종의 책 만들기 습성
시뮬라크럼
레귤러
상급 독자를 위한 비교 인지 그림책
파(波)
모노노아와레
태평양 횡단 터널 약사(略史)
송사와 원숭이 왕
역사에 종지부를 찍은 사람들 ⓘ 동북아시아 현대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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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암도서관 (☎ 055-330-4591)
최근 업데이트 :
2018-12-06 09:4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