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권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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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먼 도시, 어떤 밀회의 끝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칠암도서관_사서 이지아
독자대상 성인
서명 여행자(하이델베르크)
저자/역자 김영하 지음
출판사 아트북스
페이지수 160쪽
출판일 2007년
등록일 2019년 08월 25일

먼 도시, 어떤 밀회의 끝

여행자 시리즈의 외형은 김영하 작가 본인의 말로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행자’ 시리즈는 내가 사랑한 전 세계의 도시들에 바치는 송가라고 할 수 있다. 그 도시에 머물며 찍은 사진들과 그들을 찍은 카메라 그리고 그곳에서 쓴 소설로 책을 묶는다. p.159>

이 책을 사놓고서 한참을 읽기 싫어 비비적댔습니다. 이게 다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연예인 한 번 좋아한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유명인은 나 아니어도 좋아해 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나 정도는 좀 안 봐줘야지 하는 질투심이겠지요. 하지만 사무실 책상 한편에 꽂아 놓고 오가며 그 책을 바라보기만 하니 뭔가 안 끝낸 과제물 같아 찝찝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시간 가볍게 즐길 책으로 들고 나갔다가 단숨에 거의 읽어 버렸습니다. 책 보기를 망설이던 시간에 비하면 빠르고 탐욕스럽게 읽어 치웠습니다.

‘밀회’라는 제목은 허무할 정도로 순순히 이야기의 큰 틀을 그대로 암시합니다. 허나, 여전히 낭만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길지 않았습니다. 책 한 권에 짧은 단편 하나.
단편 하나가 어찌 책 한 권이 될 수 있을까요? 소설이라기보다는 몽상가의 중얼거림 같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두 쪽을 남겨두고 점심시간이 다 끝나 서둘러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제일 맛있는 데를 몰래 남겨두고 기다리는 아이처럼, 비밀스러운 기대를 품고 다시 일에 파묻혔습니다. 퇴근하고서야 다시 혼자가 되어 커피 한 잔을 또 앞에 둔 채로 남겨둔 이야기의 마지막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다 읽고 나니 절로 혼잣말이 나왔습니다. “이 사람은 믿는구나.”
무시무시한 흡인력을 가진 그의 장편 『검은 꽃』에서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아니, 지금은 기억에 의존해 말하는 것이니 있었던 것도 같습니다. 한 발의 총알을 맞고 스러지기 직전인 어린 청년 탈주병이 죽음을 앞에 두고 신들린듯 내뱉는 말.
“다만 윤회의 업보가 끝나기를 바라오.”
여행자 시리즈 하이델베르크 편, 이야기의 끝에서는 그 때 넌지시 엿봤던 작가의 은근한 사후 세계에 관한 믿음이 투영된 것 같습니다.

<나는 열두 살의 그 해파리처럼 투명한 육신으로 흐느적거리며 허공을 부유합니다. 나의 눈은 맑고 몸은 유연하며 정신은 명징합니다. 이 높은 곳에서 나는 오래된 도시를 내려다봅니다. 양갱처럼 검은 네카어 강에는 오렌지빛 석양이 깔리고 있습니다. 삶을 생각하기에 좋은 도시는 바로 이런 곳입니다. 나는 어쩐지 다음 생에도 이 도시에 오게 될 것만 같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안녕. p.41>

여행지에서 쓰는 한 편의 짧은 소설과 작가가 직접 찍은 집필 장소나 소설 속에 언급되었던 것들의 사진 그리고 에세이 형식의 작품 노트 이렇게 세 파트를 한 세트로 묶은 여행자 시리즈. 이것은 김영하 작가가 소위 네임드 작가가 아니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구성 같습니다. 그러기에 참신하고 또 그렇기에 치열한 작품성하고는 좀 거리가 먼 예쁜 팬시상품 같은 책입니다. 도쿄 편과 시칠리아 편이 있다지만 별로 사보고 싶은 생각은 안 듭니다. 책연(?)이 닿는다면 또 어느 점심시간을 보내며 단숨에 읽어버리고 싶습니다. 하지만 이 책, 하이델베르크 편은 저와의 책연이 그것들보다는 더 짙은 듯 하니 고이고이 간직해야겠습니다. 제 직업적 특성상 언젠가는 그를 만날지도 모르니 그때 사인받기 위해서라도 잘 모셔둬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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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
2018-12-06 09:48: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