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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자기파괴로서의 공부: 재수 없는 사람 되기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칠암도서관 사서_이지아
독자대상 -
서명 공부의 철학
저자/역자 지바 마사야 지음; 박제이 옮김
출판사 책세상
페이지수 276
출판일 2018. 3. 15
등록일 2018년 12월 10일

자기파괴로서의 공부: 재수 없는 사람 되기

이 책을 만나게 된 인연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때 신정철 씨의 『메모 습관의 힘』 이라는 책이 국립중앙도서관 추천 도서로 올라왔습니다. 그 책을 읽어보고는, 저자가 이르는 대로 메모 독서도 해보고, 그가 추천하는 독서대도 수소문하여 구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것이 책을 메모할 바에야, 책을 더 읽는 게 좋아서 메모 독서를 놓아 버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우리시 율하 도서관에서 특강을 한다는데 익숙한 이름이 들려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메모 습관의 힘』의 저자 신정철 씨가 저 먼 서울에서 특강을 하러 온다니요? 그 얘기를 듣고 저는 바로 수강신청을 딱 하고서, 그날, 그 시간, 그 강의실 맨 앞줄에 앉았습니다. 곧이어, 책표지에서는 샤프한 이미지였던 작가님이 배낭을 메고 강의실에 터벅터벅 들어오셨습니다. 어이, 감격스러웠을까요. 잡설이 길었습니다. 바로 그 강의에서 작가님이 요즘 읽고 있는 책이라고 소개해주신 책이 바로 이 『공부의 철학』입니다. 제목도 얼마나 멋진지. 공부의 철학이라니요. 그런데 뭔 말인지... 공부를 철학하는 자세로 바라보겠다는 건지, 철학 공부에 대한 얘기를 한다는 건지. 저자는 지바 마사야, 일본에서 주목받는 젊은 철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습니다. 책표지를 딱 하고 펼치면? 오오, 어떤 세대들은 다 아는 HOT의 문희준 닮은, 학자 같지 않은 스타일리시한 남자가 째려보고 있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책 내용도 흥미로웠습니다.

배움에 있어서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균형을 이룰 때 학습의 저항이 가장 적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책은 딱 그런 느낌입니다. 공부에 대해서, 누구나 아는 얘기일 법한 얘기 속에 ‘어찌 이런 시각?’이 하는 생경한 충격이 어우러진 책입니다.

「‘깊이’ 공부하지 않아도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깊이 공부하지 않는 삶은 주변에 맞춰서 움직이는 삶이다. 나를 주변 상황에 잘 ‘맞추는’ 삶, 즉 동조에 능한 삶이다. 다시 말해 주변에 공감하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반대로 ‘깊이’ 공부하는 것은 흐름 속에서 우뚝 멈춰 서는 것이다. 즉 ‘동조에 서툰 삶’이다.
깊이 공부한다는 것은 동조에 서툴러지는 것이다.」
P. 13

깊이 공부하지 않는 삶은 동조에 능한 삶이며, 반대로 깊이 공부하는 것은 동조에 서툰 삶이라고 작가는 말합니다. 작가는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도 삶은 그럭저럭 다른 이들에게 동조하면 되는 거라면서, 깊이 공부하는 이들의 서툰 동조에 관해 지적합니다. 위의 내용은 머리말에 있는 내용인데 작가가 과연 어느 쪽을 옹호하려는 건지 모호한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위의 대목을 읽고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써서 ‘악의 평범성’을 설파한 한나 아렌트가 생각났습니다. 지금은 ‘악의 평범성’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개념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녀가 희대의 살인마이자 범죄자를 옹호한다는 오해로 미움을 많이 샀습니다. 여기서 예를 들자면, 아이히만은 당시 많은 독일인들이 히틀러를 추종하는 무리에 휩쓸려간 것처럼, 다수의 동조에 능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었습니다. 반면, 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히틀러라는 악마(?)의 하수인으로 보는 다수의 시각에 꿋꿋하게 예리한 분석의 칼날을 들이댑니다. 그리고 의연하게 주장합니다. 그것은 절대적 악이 아니라 악의 평범성, 우리 누구나 내재하고 있는 기질이라고요. 이렇게 깊게 공부한다는 것은 다수의 흐름 속에 우뚝 서서 동조에 서툰 거슬리는 존재가 되는 건지도 모르지요.

「환경 속에서 살다 보면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우선순위가 매겨진다. 환경의 요구에 따라 다음에 ‘해야 할 일’이 다른 항목을 밀어내고 고개를 내민다. ‘완전히 자유롭게 살아도 좋은’ 상황이 되면 정작 그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을 정할 수 없다. 아니, 아예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중략>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행위에는 유한성이 필요하다.」
P. 26

저는 이 대목을 읽고 한때의 저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극히 모범생이었던 저는 대학생이 되고 얼마 안 있어 다른 계획이 있다고 중퇴를 합니다. 휴학해도 될 것을 중퇴를 해버려 무한한 자유를 얻습니다. 그리고 그 무한한 자유 안에서 문자 그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저것 시도는 해봅니다. 그러나 다 수박 겉핥기에 그치고 그 어떤 성과도 얻지 못합니다. 100% 자유로운 시간 속에서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건만 왜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을까요? 우리에게는 행동을 지속시키는 어떤 틀, 어떤 규정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굳이 대학교에서 전공 공부를 안 해도 전문적인 공부를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부에 맞는 커리큘럼과 자원을 스스로 찾아내야 합니다. 스스로 찾고 보면 그것이 스스로 규정한 유한성이 됩니다. 이 유한성 내에서 목적을 가지고 반복하는 행동이야말로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하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작가는 이런 상태를 유한성과 함께하면서도 자유로운 상태라고 표현합니다.

작가는 이어서 또 말합니다. 동조란 환경의 코드에 자신을 온전히 맞춘 상태이며 이것은 동조에 서툴다고 간주하는 상황을 배제하는 것과 같다고 말입니다. 여기서 다시 한나 아렌트의 예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녀의 동조하지 않는 꿋꿋함은 같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동조하지 않는 자를 배제하는 상황이죠.
하지만 누구나 무의식적으로 환경의 동조에 점령당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공부의 역할이 나옵니다. 작가는 단언합니다. 공부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동조로 이사하는 것이다.’라고요. 이미 몸담은 동조의 코드에서 자유로워지는 거지요. 그래서 공부를 통해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동조하지 못하는 재수 없는 사람이 되는 길이 됩니다. 이전의 나는 파괴되고 새로운 나가 됩니다. 이전의 환경의 코드에서 벗어나 나의 코드가 바뀌면 곧 머지않아 나의 환경이 바뀝니다. 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는 행위의 근본에는 자신을 변화시키고 싶은 열망이 숨어있는 겁니다.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아는 얘기만 떠드는 책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모르는 것을 말하고 ‘아, 그렇구나’ 하는 깨달음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동시에 어설프게 공부하며 사는 내가 왜 이다지도 환경에 섞이지 못하고 튀는 존재가 되는가에 대한 고민을 어루만져주는 책이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내가 재수 없었구나. 앞으로도 쭉 재수 없겠구나. 포기해야겠네.” 하는 유쾌한 자조의 소리를 내뱉으며 책을 덮었습니다. 그래서 강의는 재미있었냐고요? 네,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만나게 해주어서 더 좋았습니다.


<목차>
머리말
1장 공부와 언어 : : 언어 편중적 인간으로 변신하기
공부란 자기 파괴다
자유로워지기, 가능성의 여지를 열기
목적, 환경의 코드, 그리고 동조
우리는 환경의 동조에 이미 점령당했다
나는 타자에 의해 구축된다
언어의 타자성, 언어적 가상현실
동조와 동조 사이에서 언어의 세계가 번쩍인다
언어의 불투명성
도구적 언어와 완구적 언어
나 자신을 언어적으로 해체하기
깊게 공부하기란 곧 언어 편중적 인간이 되는 것

2장 공부와 사고 : : 아이러니, 유머, 난센스
겉도는 이야기에 자유가 깃든다
사고의 기술, 츳코미(아이러니)와 보케(유머)
코드의 불확정성
자기 츳코미와 자기 보케
코드의 전복
난센스라는 제3의 극
대화에 깊이를 더하는 아이러니
아이러니의 과잉, 초코드화에 의한 탈코드화
새로운 시각을 부르는 유머
유머의 과잉, 코드 변환을 통한 탈코드화
또 하나의 유머, 불필요하게 세세한 이야기
언어의 비의미를 향락하기
아이러니에서 유머로
향락의 동조가 궁극의 동조다
이름 짓기의 원장면, 언어와 새롭게 다시 만나기

3장 공부와 욕망 : : 결단이 아닌 중단으로
현상 파악에서 문제화로, 나아가 키워드 도출로
키워드를 전문 분야에 끼워 맞추기
발상법으로서의 아이러니와 유머, 추구형과 연상형
공부는 한도 없고 끝도 없다
생각해서 비교하기
아이러니에서 결단주의로
비교를 중단하기
집착의 변화
욕망 연표 만들기
지바 마사야의 메인 욕망 연표
서브 욕망 연표
메인 연표와 서브 연표 연결하기
다가올 바보를 향하여

4장 공부의 기술 : :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는 힘
전문 분야에 입문하기
완벽한 독서란 불가능하다
입문서 읽기
교사는 공부를 유한화하는 존재
전문서와 일반서를 구별하는 기준
학문의 세계는 신뢰성의 세계
독서의 기술 1 : 텍스트 내재적으로 읽기
독서의 기술 2 : 이항대립 관계 파악하기
공부의 두 바퀴 : 언어의 아마추어 모드와 프로 모드
노트의 기술 : 공부의 타임라인
글쓰기의 기술 : 횡적으로 발상하기
아웃라이너와 유한성

결론
이 책의 학문적 배경
참고 문헌
지은이의 말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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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부서
장유도서관 (☎ 055-330-7461)
최근 업데이트 :
2018-12-06 09:4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