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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사적인 행복과 공적인 가치의 조화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칠암도서관_사서 이지아
독자대상 -
서명 수영하는 사람들(원제: East London Swimmers)
저자/역자 매들린 월러 지음/ 강수정 옮김
출판사 에이치비프레스
페이지수 96쪽
출판일 2019년 7월
등록일 2019년 08월 12일

사적인 행복과 공적인 가치의 조화

오늘 소개하려는 책은 2019년 여름에 딱 어울리는 책 『수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책은 저에게는 어쩐지 데자뷔 현상을 일으킵니다. 그 이유는 2018년 8월에 출간된 영국 작가 리비 페이지의 『수영하는 여자들』 덕분입니다. 두 책 모두 영국 런던을 배경으로 하였고 ‘리도’라는 야외 수영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야기, 혹은 정경들입니다. 책 제목마저 비슷하네요. 사진 에세이집이라고 할 수 있는 『수영하는 사람들』은 소설 『수영하는 여자들』에서 만날 수 있는 배경과 사람들이 사진으로 찍힌 것만 같습니다.

두 책의 배경인 ‘런던’은 국제적인 명성의 세련된 도시입니다. 그러나 번화함은 런던 중심가에서 그칠 뿐이지, 변두리 쪽은 얘기가 달라집니다. 소설 『수영하는 여자들』에서는 흑인 또는 이민자가 주민의 대부분인 런던 브릭스턴이 주무대로 나옵니다. 주인공은 브릭스턴에 사는 젊지만 우울하고 공황발작에 시달리는 지방 신문사 기자입니다. 그녀가 지역의 공공시설-리도라고 불리는 야외 수영장-폐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든여섯 살의 따뜻한 할머니, 로즈메리를 만나면서 리도를 함께 지켜내게 되는 이야기가 기본 줄거리입니다. 『수영하는 여자들』을 읽어본 한국 독자들이라면 궁금할 겁니다. ‘리도가 뭐지?’, ‘리도에서 수영을 해보면 어떨까, 춥지 않을까?’, ‘고작 수영장과 지역 공동체가 무슨 관계가 있지?’...... 아마도 이런 의문들이 떠오를 겁니다. 한국의 수영장 하면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스포츠 시설의 실내 수영장 위주라서 영국의 공영 야외 수영장 리도(lido)의 존재는 꽤 흥미롭습니다. 『수영하는 여자들』을 먼저 읽어본 독자들이라면 이 책 『수영하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그런 궁금증을 풀 수도 있을 겁니다.

『수영하는 사람들』은 영국 런던의 자치구인 해크니에 위치한 공원-영국하면 홍차, 정원, 그리고 공원이죠?-런던필즈의 ‘리도’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 그것도 하얀 눈이 바닥에 수북한 한 겨울에 찍은 사진입니다. 글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추천 도서로 이 책을 정하는데 좀 고민이 있었습니다. 인용할 텍스트도 빈약하고 책에 대해 할 말이 많지 않았거든요. 이 책의 서문은 역시 해크니 거주민인 기자가 썼는데, 그 서문이 이 책에서 제일 긴 글입니다. 그리고 그 서문이야말로 이 책의 추천사로 딱 맞는 글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서문을 그대로 복사해서 추천사로 올리면 좋겠지만, 제가 쓰는 글은 또 저만의 프리즘을 통과한 것이어야겠지요? 그러니 궁색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런던필즈 리도도 앞서 언급한 수영하는 여자들의 리도처럼 폐쇄될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아니, 실제로 폐쇄되어 있었습니다. 1932년부터 운영되던 것이 1988년에 문을 닫고 20년 동안 버려진 채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역민들의 끈질긴 응원과 노력 덕분인지 2006년에 다시 문을 열었습니다. 현재까지도 해크니 주민들이 와서 수영하고 교류하는 지역의 핫 플레이스로 사랑받고 있다고 합니다. 런던필즈 리도를 인격화시킨다면 정말 온갖 우여곡절을 겪고 살아남은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책의 저자는 호주에서 태어났지만 런던 해크니에서 살고 있는 매들린 월러로 사진작가입니다. 인물사진에 주력한 사진가로 시인의 얼굴을 찍은 연작 사진은 런던 국립 초상화 미술관의 컬렉션으로 소장되기도 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았습니다. 이 책에서도 그런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 같습니다. 수영하는 사람들의 사진집이라지만 짤막짤막한 미니 인터뷰집 같기도 합니다. 중간 중간 수영장 전체의 전경이며 물속에서 수영하는 사람의 사진도 있지만, 이 책의 기본 형식은 동일인의 사진 두 장씩 한 쌍이 됩니다. 처음 사진은 런던필즈 리도에 수영하러 온 뚱한 표정의 해크니 주민이 정면으로 매들린의 사진에 찍힌 모습입니다. 매들린이 모델이 된 주민들과 약속을 잡고 사진을 찍었는지 어쨌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무표정하거나 슬며시 웃거나 하든지 간에, 사진기 앞에서 어색한 포즈로 손을 어디다 둘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이것은 연출된 사진이 아닐 겁니다. 작가가 미리 런던필즈 리도에 머무르면서 찍었을 겁니다. 먹이를 물색하는 맹수처럼 때를 기다렸다, 맘에 드는 캐릭터의 사람에게 쓱 다가가 “사진 찍어도 될까요?” 하고 묻고서는 셔터를 눌러대는 작가의 모습이 상상됩니다. 좀 까다로운 사람 앞에서는 내가 이 사진을 왜 찍는지 어떤 책을 기획하고 있는지 짧은 제안서를 발표(?)했는지도 모릅니다. 동네 수영장에 수영 한 번 휙 하러 온 사람들의 평범한 차림새를 찍은 사진 밑에는 이름과 나이 직업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다음 장을 넘기면 뚱한 표정이었던 아까 그 동네 사람이 반벌거숭이가 되어서 나옵니다. 한 겨울, 수영복만 걸치고 확 달라진 모습으로 같은 장소에서 ‘짠’ 하고 찍은 두 번째 사진이 나오는 것이지요. 수영복 입은 사진 옆쪽에는 모델의 짧은 코멘트가 있습니다. 자기 인생 이야기, 어디서 수영을 해 봤는지, 언제부터 수영을 했는지, 수영을 하면 어떤 기분인지, 수영장에서 느낀 행복, 수영의 이로움, 공영 수영장 리도의 의미 등등 사진에 나온 인물들의 수영 또는 수영장과 연관되는 짧은 이야기가 소개됩니다. 서문을 쓴 해크니 주민 로버트 크램튼이 언급하기도 했는데 이런 구성에서 앞장과 뒷장의 같은 인물이 매우 달라 보입니다. 매들린이 찍은 리도에 막 도착한-우리로 치면 목욕탕에 목욕하러 온 사람들의 마음가짐과 차림새로 무장(?)한-사람들의 모습과 한 장을 넘기면 나오는 수영복을 입고 뭔지 모르는 힘을 받은 생동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동일인을 같은 장소에서 찍은 것인데도 꽤나 반전 매력이 있습니다. 같은 장소는 단순히 런던필즈 리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는 앞뒤 사진의 극적인 비교를 위해 사진을 찍은 바로 그 장소에서 그 다음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수영복을 입고 찍은 사람들은, 그 사진을 찍을 당시 벌써 리도를 한 바퀴 돌아 머리카락은 젖어서 착 달라붙어 있고 볼이 상기되어 있으며 내면에서 솟아나오는 수영하는 기쁨에 흠뻑 젖은 모습입니다. 이들의 몸에서도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것 같습니다. 추운 겨울, 그것도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하나도 추워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털모자에 머플러, 두꺼운 코트나 패딩을 입고 찍은 각 인물의 처음 사진의 모습이 더 추워 보입니다. 책 표지 모델을 볼까요? 책 표지에 나온 사람은 큼지막하고 화려한 꽃무늬 수영복을 입고 꽃 디테일 장식이 있는 새하얀 수모를 쓴 여인입니다.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리도 앞에서 맨 발로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는데도 추워 보이기는커녕 당당해보입니다.

퍼가 달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왼쪽으로 긴 금발 머리를 늘어뜨린 카키색 봄버에 기모 바지를 입고 선량한 미소를 띄고 있는 여행사 직원이 다음 페이지에서 보면 강렬한 빨간 비키니에 비취색 수모랑 색깔을 맞춘 듯한 물안경을 끼고 모델처럼 시크하게 서 있습니다. 시크한 그녀가 하는 말도 뭔가 멋집니다.

< 몸을 감싸는 물의 느낌,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온도 차이, 특히 겨울에 차가운 데에 있다가 따뜻한 물로 들어갈 때의 느낌, 그 모든 것들을 전부 사랑한다. 도시의 삶을 견디게 해준다. -----------카리나의 말 >

삐딱한 자세로 호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 야려보듯이 쳐다보는 흑인 버스 기사 아저씨는 다음 장에서 보면 꽉 끼는 수영복 바지만 입은 채 보디빌더 같은 몸을 하고 있습니다.

< 수영장을 90번에서 100번쯤 주파한다. 교대하는 사이에 몇 시간이 비는데, 그때 수영을 하면 긴장해소에 도움이 된다. 런던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수영은 자긍심을 갖게 해준다.---------폴의 말 >

런던 버스 운전기사로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겁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정체성이 대중의 무관심에 매몰되는 상황에서 수영을 하면서 자긍심을 찾는다니 첫 인상에 비해 너무도 바람직하지 않습니까?
마흔 네 살에야 수영을 처음 배우며 그 느낌이 마치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는 느낌이었다는 째즈 음악가, 꿈 속에서도 수영하는 꿈을 꾸며 행복해하는 사무원, 수영을 하며 야간 근무의 피로와 스트레스를 풀고 깊은 잠을 청한다는 뉴스 프로듀서의 짧은 이야기들은 그 하나하나가 공감 가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저도 처음 수영을 배울 때의 기억이 났습니다. 물 속 몸짓에 익숙해져 보니, 마치 공기 속에서도 물속에서 하듯이 유영할 수 있을 것만 같았지요. 두 다리를 가볍게 지상에서 떼고 두 팔을 앞으로 쭉 뻗으면 그대로 둥둥 떠오를 것만 같은 상상이 꾸물꾸물 올라오곤 했습니다. 가족들과 산을 탈 때도 그 생각이 나서 하마터면 산 위에서 구를 뻔했지요. 몸에 꼭 끼는 수영복을 입고 군살을 여지없이 드러낸 우스꽝스런 모습으로-몸매가 완벽하다면야 뭐, 예외- 똑같은 스트로크를 반복해야 하는 수영에 뭐 그렇게 특별한 것이 있을까요? 그러나 수영하는 사람들은 다 압니다, 수영의 매력을.

< 매들린이 포착한 리도의 모습에서 드러나는 또 한 가지 특징은 수영장이라는 공간에 내재된 평등성이다. (...)실력에 관계없이 누구나 반벌거숭이가 되어야 한다는 데서 오는 일종의 취약성을 공유한다. 그리고 야외 수영장만이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매들린의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점도 앞의 특징들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서문에서 >

이 책에는 아름다운 야외 수영장의 전경과 그 속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빚어내는 풍경, 수많은 물결이 만들어내는 프레임 속에서 헤엄치는 육체의 신비로운 아름다움이 전문 사진작가의 렌즈에 유려하게 찍힌 사진이 있습니다. 그리고 런던필즈 리도에 수영하러 오는 해크니 주민들의 매력과 반전, 솔직한 가치관의 면면들이 멋진 책 한 권을 만듭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습니다. 런더필즈 리도가 있는 해크니는 좋은 평판을 받고 있는 동네가 아닙니다. 개발이 활발한 지역과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의 편차는 사회 문제를 일으킵니다. 마을 공동체가 죽어갈 때 범죄율이 높아지고 지역민의 경제 상황은 악화됩니다. 한 마디로 사람 살기가 팍팍한 곳이 되어가지요.

<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한 이 동네의 오랜 주민으로서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지역의 부활을 보여주는 증거 자료
라는 사실이야말로 매들린의 사진이 지닌 진정한 힘인 것 같다.-------------서문에서>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을 겁니다. 앞서 언급한 소설 『수영하는 여자들』의 주인공 로즈메리가 리도를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썼던 것은 단지 취미로 수영할 수 있는 장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을 공동체를 지키고자 하는 노력이었습니다. 문턱이 닳도록 이용자가 넘치는 리도, 리도에서 찰랑대는 물과 그 물에서 첨범대는 사람들의 일상의 행복은 공동체를 키우는 원동력이 됩니다. 구성원의 정서적 만족감과 주민의 유대 관계가 높아지면 공동체의 경제력과 환경이 개선되는 것은 더 이상 모호한 인과 관계가 아니라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회적 선순환 현상입니다. 큰 도시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일수록 저마다의 소중한 삶을 꾸려내고 있는 서민들의 행복을 지키고 도시화로 인해 놓친 균형의 추를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제는 성장만이 아니라 그것을 형평성 있게 나누어야 하는 시점일 겁니다. 그럴 때 이 이야기는 런던의 해크니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우리 동네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야기의 가치는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읽으며 가슴 속에 여운으로 남습니다. 그 여운이 싹이 되어 옳은 행동을 해야 할 때 그 행동을 이끌 수 있는 추진력이 되어 줄지도 모릅니다.

너무 거창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그런 생각일랑 다 접어두지요. 여기 한겨울에 수영하러 와서 행복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말을 들어보며 우리도 좀 행복해져볼까요?

(쓸데없는) 참고1.
이 책은 페이지 수가 표기되지 않았습니다. 빌려서 오래 묵혀 읽는 것보다 잠시 관내 대출해서 차 한 잔 마시며 읽기를 권합니다. 차를 마실 때는 조심하셔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시죠? ^^
(쓸데없는) 참고2.
2015년 런던 브릭스턴에 자정이 넘어 도착하여 숙소를 못 찾고 헤맨 경험이 있습니다. 사방에 개성 강하고 덩치 있는 흑인들만 있어 무서웠는데, 길을 물었더니 무척 친절해서 브릭스턴 거리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 좋았던 것은 괜히 저를 붙잡고 늘어졌던 입국심사관. ^^
(쓸데없는) 참고2.
광안리 근처에도 꽤 큰 규모의 버려진 야외 수영장이 있습니다. 벌써 수 십 년 동안 방치돼 있다고 들었는데 런던필즈 리도처럼 다시 개장을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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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2-06 09:4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