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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우리들의 시절을 부르는 소리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칠암도서관_사서 이지아
독자대상 -
서명 시절일기
저자/역자 김연수
출판사 레제
페이지수 336쪽
출판일 2019-07-22
등록일 2019년 09월 18일

우리들의 시절을 부르는 소리

제목이 문제였습니다. 시절일기... 얼마나 간결하고 아름다운 제목입니까?
여기에는 또한 개인적 일기가 한 시절을 반영할 수도 있다는 진실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진짜 일기는 아닙니다. 일기처럼 날짜순으로 순차적인 차례를 취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책의 처음 일기는 2017년에 시작했다가 2014년으로도 가고, 다시 2010년으로도 갑니다.

저자 김연수 작가는 1993년에 ‘시’로 먼저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장편소설로 작가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시인인 소설가의 행보는 흥미롭습니다. 그가 쓴 소설은 소설적 탄탄한 플롯과 재미에 더해 문장마다 시적인 아름다움이 넘쳐흐릅니다. 그의 2015년 소설의 제목을 보면 시어의 한 구절 같습니다. 그 소설의 제목을 따온 소설 속의 한 문장은 그대로 한 줄 시입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소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김연수」

김연수 작가의 작품 활동은 시와 소설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작가는 『청춘의 문장들』, 『소설가의 일』 『지지 않는다는 말』, 『언젠가, 아마도』 등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여실히 아름답게 세상에 내놓습니다. 그리고 2019년 여름의 새로운 에세이가 바로 이 『시절일기』입니다.

작가인 자가 쓰는 에세이면 언제나 천착하고 마는 주제가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어떻게 글을 쓰게 되었는가?’ 라는 의문입니다. 작가는 이런 의문에 대고 소박하게 대답합니다. “뭘 계속 쓰다보니까 어느 날 작가가 됐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여기에 더해서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구체적인 지침도 내려줍니다.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날마다 쓰고 적어도 이십 분은 써야 한다고 합니다. 자주 쓰다 보면 많이 쓸 수밖에 없고 결국에는 잘 쓰게 된다는 논리이지요. 이 책에서 특히 좋은 대목은 글 쓰는 행위의 의미를 밝힌 대목입니다.

「소설가 D.H.로렌스는 “사람이 두 번의 삶을 살 수 있다면 좋으련만. 첫 번째 삶에서는 실수를 저지르고 두 번째 삶에서는 그 실수로부터 이득을 얻도록”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은 한 번의 삶으로는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어렵다는 뜻이겠다. 어느 소설에서 나도 쓴 적이 있지만, 사소한 실수라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 인생의 의미를 알아내려면 적어도 두 번의 삶은 필요하다. (...) 우리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한 번 더 살 수 있다.」 p.19~20

우스갯말로 사람은 중요한 결정일수록 생각을 안 하고, 사소한 일을 결정하는 데는 오래 생각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점심 메뉴를 한식으로 먹을지, 중식으로 먹을지, 한식으로 먹는다면 된장찌개를 먹을지, 김치찌개를 먹을지 한참을 고민하는 결정 장애인(?)들을 보면 그 말이 맞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반대로 길을 건널 때 생각 없이 내디딘 발이 목숨을 앗아가기도 하는, 몇 초간의 결정이 완전히 운명을 뒤바꿔버리는 그런 상황들을 봐도 그렇습니다. 삶이란 것은 부조리합니다. 이토록 온몸과 마음을 바쳐 살아내는 삶을 우리는 연습할 새도 없이 맞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두 번 살아낼 수 없는 삶의 불가해성을 한탄만 하고 있다면, 마음은 그저 어둠으로 가라앉을 것입니다. 닥쳐오는 모든 상황에 대한 부정적인 해석도 피해갈 수 없을 겁니다. 그런데 작가는 이처럼 ‘글쓰기’라는 행위에 인생을 결부 시켜 아름다운 묘미를 얻어냅니다. 과연 우리는 글 쓰는 행위를 통해 과거를 반추하며 의미를 찾고 미래를 설계하기도 합니다. 이토록 대단한 글쓰기라니... 새삼 글쓰기의 위력에 감탄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작가의 담담하지만 빛나는 성찰이 보이는 것이 저런 대목이라면, 그의 글 센스 혹은 글 짓는 재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은 이런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들, “이상하다, 꽃그늘 아래 이렇게 살아있는 것”, “얼마나 운이 좋은가, 올해에도 모기에 물리다니”, “극락세계에 가지 않은 축복, 올해의 술”까지 읽은 뒤, 다시 “이슬의 세상은 이슬의 세상이지만, 그렇지만”에 달린 각주에 줄을 긋는다(...) 이 지옥 같은 세상 속에서 문학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p.27

일본의 ‘하이쿠’는 아마도 세상에서 제일 짧은 시 형식일 겁니다. 이 하이쿠로 이름 높은 ‘잇사’라는 옛 시인이 있었는데 그의 삶은 비극이었습니다. 비극인 그의 삶을 두고 작가는 ‘세상은 지옥’이라는 진부하고도 자명한 문장은 그에게 저작권이 있다고 단언할 정도입니다. 잇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다는 것의 기쁨을 노래하는 하이쿠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도 인간인지라 눈물밖에 흘릴 수 없는 그의 비련 가득한 세상을 ‘이슬의 세상’이라고 칭합니다. 슬픔을 노래한 하이쿠에도 ‘그렇지만’이라는 마지막 조를 붙입니다. 마치 판도라가 금지된 상자를 열었을 때 마지막으로 희망이 남은 것처럼, 이 하이쿠에도 미약하지만 강력한 희망을 남긴 것입니다. 동시대의 아픈 것들, 약한 것들에 강한 공감을 나누는 저자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옥 같은 세상’이라고 격하게 단언하며, 여기서 문학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그다음 잇사의 하이쿠를 변용하여 ‘그렇지만’이라는 말을 살포시 덧붙입니다. 원본을 가지고 하는 재창작 인용이 이렇게나 적확하게 쓰이는 것을 잘 못 봤습니다. 그의 작가적 재능의 현현에 눈이 부십니다.

그러나 이런 대목에서는 작가의 태도가 너무 수동적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듭니다.

「이십 년 전에 뭔가 쓰고 싶은 욕구를 느낀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이 생겨서, 그렇게 이십 년이 흘렀고, 나는 내가 쓴 것들로 인해 그전에 상상도 못한 어떤 사람이 됐다. 다시 그만큼의 시간이 흐르면, 지금의 아이들 역시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어떤 사람이 되어 있으리라. 아이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들이 자라 우리가 상상조차 못했던 어떤 사람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오지도 않은 시간에 미래라는 이름을 붙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p.107

이번에도 희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혹은 쓴다는 행위가 가져오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어떤 것을 쓴다는 것, 태초(?)에 한 사람의 미약한 사상에 불과하던 것이 활자화되고 다른 이들에게 영향을 끼쳐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과정은 언제 봐도 놀랍습니다.
하지만 과연 상상도 못한 것이었을까요? 글을 쓰다 보면, 글을 쓰는 누군가가 되기 마련입니다. 아이들의 환경, 자라는 과정을 보면 어른이 된 그 아이들의 미래를 일부 상상할 수 있게 됩니다. 미래는 단지 미지의 것이라서 희망적인 것은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그리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무언가를 지속해나갈 때 돌아오는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작가는 미래를 앞두고 열띤 기대와 함께 한편으로는 지나친 무력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손댈 수 없는 미래, 감히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었던 것이 기다리기만 하면 빛나는 것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미래는 통제불가입니다. 인정합니다. 그렇다 해도 미래 역시 우리가 지금 하는 행동으로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그대, 바라는 미래가 있다면 원하는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지금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도 작가 김연수의 글은 여전히 아름답습니다. 세상사를 연민의 눈으로 관찰하는 작가가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큰 사건들을 맞닥뜨리는 개인의 심정을 담담하게 서술한 것이 그렇습니다. 2014년의 기록들에 저는 새삼 부끄러워지고 슬퍼졌습니다. 이 책에서 처음 알았습니다.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죽어간 아이들의 단톡방 마지막 말이 ‘부디’였다는 것을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습니다. 어디에든 ‘개’라는 접두어를 붙이고, 욕하듯이 말하는 게 예사인 10대 아이들의 단톡방에서 ‘부디’라는 말은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단 말입니까. 그들의 ‘부디’에는 처연한 슬픔이 깃들어 있습니다. 얼마나 간절한 마음이었을까요. 부디 그들은 ‘구해지기’를 바랐습니다. 부디, 부디... 우리는 모두 그들을 ‘구해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디’의 바람은 어디에도 닿지 못했습니다. 작가는 그날의 아이들을 생생하게 상상해 봅니다. 이제 막 잠에서 부스스 깨어난 아이들. 수학여행지인 제주도에 도착하기만을 설레며 기다리던 2014년 4월 16일 그들의 아침을 기억하고 맙니다. 그들은 결코 제주도에 닿지 못했습니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이 입증한 바에 의하면 우리에게는 거울 신경이 있어서 타인의 고통을 보기만 해도 그와 같은 고통을 받는다고 한다. 인간이 타인을 보살피고 연민하는 능력은 타고난 것이다. (데이비드 라켈, 2019)」

사람이 다른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필연적입니다. 하지만 모든 이의 고통을 다 끌어안으면 나라는 개체의 생존 또는 내가 지켜내야 할 생명이 위태로워지게 됩니다. 그래서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타인의 고통에 둔감해지기 위해 자기 자신을 개조해온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 개조 정도가 지나쳐 냉담한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개인이나 개인이 속한 사회에나 비극이 될 것입니다. 이 책 『시절일기』를 통해 지나치게 세상의 고통에 무심해지는 나 자신을 다시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우리의 ‘시절일기’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목 차>

프롤로그 내가 쓴 글, 저절로 쓰여진 글 5

제1부 장래희망은, 다시 할머니 13
제2부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 57
제3부 그렇게 이별은 노래가 된다 109
제4부 나의 올바른 사용법 151
제5부 그을린 이후의 소설가 221

참고문헌+ 302
ps 사랑의 단상, 2014년 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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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글샘도서관 (☎ 055-330-2991)
최근 업데이트 :
2018-12-06 09:5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