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권하는 책

우리시 도서관 사서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시민들이 좋은 책을 선택하는 안내 길잡이가 되어 독서의 재미를 안겨드리겠습니다.

어린이-그림책

당신의 ‘11월’은 어떤 모습인가요?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김은엽(김해기적의도서관)
독자대상 어린이
서명 11월
저자/역자 신시아 라일런트, 질 캐스트너 이상희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페이지수 34쪽
출판일 2003.11.03
등록일 2012년 11월 20일

당신의 ‘11월’은 어떤 모습인가요?

좀처럼 눈이 귀한 동네니까요. 오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만, 맑고 차가워진 공기가 마치 첫 눈이 올 것 같은 기분이 자꾸 들어 창밖으로 여러 번 눈이 향합니다. 그래요. 차라리 눈을 기다리는 마음이네요. 아직 한 겨울의 살벌한 ‘냉기’까지는 아니어도, 갑자기 쌀랑해진 주위가 못내 아쉬워서 그런가봅니다. 손톱이 자라있듯, 매일매일 하루하루 계절도 지나가고 달라지고 있을 뿐인데, 붙잡을 수도 두 팔 벌려 반길 수도 없어 할 말을 다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누군가의 문 앞에 선 것 마냥 내내 아쉽고 서운합니다.

한창 반짝이는 가을을 기대하며 들뜨는 9월과 10월을 지나 화려한 불빛 아래 캐롤송이 번지고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느라 수선을 떠는 12월 ‘사이’에 있는 11월은, 가을에 흠뻑 취했다가 미처 준비하지 못했건만 서둘러 온 겨울을 맞아야 하는 달이어서 그런지 11월만의 고유한 느낌을 종종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창시절, 늘 당연하게 함께 있어 줄 것 같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전학을 간다고 했을 때야 비로소 그 녀석이 데워주었던 훈훈한 공기를 뒤늦게 알아차렸던 것처럼.. 우리가 무심히 대했던 차분하고 담담한 ‘11월’의 아름다운 결을 고스란히 살려둔, 낙엽을 닮은 그림책 『11월』(신시아 라일런트 글․ 질 캐스트너 그림․이상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을 소개합니다.

11월은 그런 달이잖아요. 왠지 세상이 조용해지는 시간. 책에서는 꽃들과 작은 동물들이 잠들 겨울 침대를 만들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하얗고 포근한 침대, 수많은 생명들이 한꺼번에 숨어들 수 있는 그런 침대를 말이에요.
또, 11월이면 나무들이 날씬한 가지만 남긴 채 서 있잖아요. 이파리 하나 없이, 너무나 사랑스럽게 춤추듯 팔을 벌린 채로. 그건 나무들도 이제 조용히 지낼 때가 왔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래요. 멀리 떠나가는 새와 남아 있는 새들이 주고받는 ‘잘 가요’, ‘잘 지내요’라는 인사가 하늘에 가득한 11월에는 봄날처럼 철없이 짹짹거리지 않는 새들을 볼 수 있다구요. 왜냐하면 떠나가는 새들은 기나긴 여행을 어디로 가야 할지 살펴야 하고, 남아 있는 새들은 춥고 배고픈 계절을 준비해야 하니까요.
농담처럼 ‘겨울잠’을 준비해야 해서 몸이 이렇게 나른한가보다 했던 ‘11월’엔 무릇 동물이라면 느낄 수밖에 없는 자연의 기운이 있어서였나본데요. 공기가 차가워져 추위를 타기 때문에 동물들이 자꾸 엎드려 잔다고 해요. 고양이들은 헛간 구석에서 서로 몸을 포개고, 생쥐들은 통나무 아래에서, 꿀벌들은 깊은 땅 속 구멍 속에서요. 또 개들은 따스한 불가에 가서 엎드려 눕고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기가 차가워지면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는 건 공통적인 감각인가봅니다. 서양의 책이어서 떠올리는 음식은 우리와 다르지만, 11월이면 확연히 달라지는 게 음식 내음인 건 똑같네요. 평소보다 다정하게, 서로의 집으로 파이를 갖다 나르고 타닥거리는 장작 난로 곁에서 달콤한 사과즙을 홀짝이며 얘기를 나누며 특별한 어느 날엔 모두 모여 음식과 지금 안고 있는 아기와 그 밖에도 수없이 축복 받은 일들에 감사드리며 다시 먼 길을 되돌아 집으로 가는 일. 결국 ‘온기’를 나누는 것이겠죠.

앞서 나온 11월에 관한 모든 묘사가 아름답지만, 마지막으로 모든 이야기를 닫는 마지막 장의 시적인 표현은 정말 압권입니다. “11월은 겨울로 들어가는 문이에요. 별들은 몹시도 반짝이고 해님은 자주 못 보는 친구가 되지요. 세상은 자기 아이들 이마에 입 맞춘 다음 포근히 감싸 안아요. 봄이 올 때까지....”

논리적으로 맞지는 않지만, 오히려 뜻을 강조하기 위한 수사법이라는 ‘역설’을 배웠던 날 저도 연습하는 마음으로 떠올렸던 구절이 있었어요. “겨울은 따뜻한 계절이다!” 생각해보니 그렇더라구요. 여름엔 너무 더워서 가까이 오면 밀쳐내던 형제들이, 겨울엔 한 방에 오글오글 모여 앉아 귤을 까먹는가 하면 특히나 평소엔 혼자 있기 좋아하던 새침떼기 큰언니가 독점 하던 강아지까지 인심쓰듯 데리고 거실에 나와 함께 있는 계절이었으니까요. 약속한 건 아니지만, 유독 퇴근하는 아버지의 손에 아직 김이 나는 호떡이나 붕어빵이 들려있기를 기대하기도 했구요.

자연과 가까이에서 누구보다 자연의 질서를 존중하며 살았던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했다지요. (아, 정말~ 어쩜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요!) 섬세하고 서정적인 글에 자연의 빛깔을 그대로 담은 선 굵은 그림, 체에 걸러 고운 모래만 남기듯 가장 고운 한 줌의 말만 남겨 우리 말로 옮기신다는 이상희 선생님의 번역까지... 이 책은 이미 20일이 넘게 지나가버린 ‘11월’을 어찌할 수 없이 사랑하게 만듭니다. 매일매일이 획기적이게 달라지진 않더라도, 사실은 하루하루 아름다운 신비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 날씨 탓인지, 기분 탓인지 평소보다 선명하게 느껴지는 하루입니다. 11월이 다 가버리기 전에, 어떠세요? 두꺼운 책 사이에 끼워두었던 빨간 단풍잎 찾아내듯, 가장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 마주하는 날이 있으시기 바래봅니다.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담당부서
김해시청 장유도서관 열람팀 (☎ 055-330-7461)
최근 업데이트 :
2024-02-28 09: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