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권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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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그림책

진짜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요?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김은엽(김해기적의도서관)
독자대상 초등학생 이상
서명 서로를 보다
저자/역자 윤여림 글, 이유정 그림
출판사 낮은산
페이지수 52쪽
출판일 2012.10.10
등록일 2013년 04월 17일

진짜 내 이야기를 들어줄래요?

“서로를 보다”(윤여림 글․ 이유정 그림, 낮은산)라는 제목과 달리, 표지를 펼치면 사람과 동물은 서로를 보지 않고 등을 돌린 채 있습니다. 그러고는 황량함인지, 그리움인지, 자유로움인지 알 수 없는 초원을 닮은 면지를 지나 우두커니 서 있는 작은 동물 한 마리를 만납니다. 스스로 멈춰 선 건지, 무엇에 가로 막힌 건지, 절망한 건지, 두려운 건지, 망연자실한 건지 잘 알 수가 없습니다.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면, TV나 책에서만 보았던 동물을 감격스럽게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된 (표지의) 소녀가 동물원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과 주고받는 문답이 이어집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죠.

바람처럼 초원을 달리는 동물, 치타. 네가 젖먹이 동물 가운데 가장 빠르다며? 한 시간에 백 킬로미터 속도로 달릴 수 있다니, 멋지다. 글쎄, 난 잘 모르겠어. 그렇게 달려보지 못했거든.
구름처럼 하늘을 나는 동물, 쇠홍학. 너는 먹이가 많은 호수를 찾아 한번에 몇 킬로미터씩 날아가는구나. 여기서는 먹이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 그래도 가끔 날고 싶긴 해. 아무리 날갯짓을 해도 날 수 없지만.
나뭇가지를 타고 숲을 누비는 동물, 긴팔원숭이. 너는 팔이 길고 힘이 세서 나뭇가지를 타고 여기저기 잘도 다닌다더라? 그래, 팔 힘이 세서 난 이렇게 창살에 매달리곤 해. 하루 종일.
파도를 타고 바다를 누비는 동물, 돌고래. 너는 어쩜 그렇게 똑똑하니? 조련사 말을 척척 알아듣잖아. 너희만의 말이 있어 서로 얘기도 나눈다며? 친구랑 나는 늘 이런 말을 해. 바다가 그립다고.

소녀는 다시 기회가 없을 것처럼 궁금한 것들을 자꾸 묻습니다. 원래 추운 곳에서 먹이를 찾는다고 알고 있지만 북극이나 눈보라는 기억조차 나지 않고 지금은 너무 덥다고 말하는 북극곰에게, 캄캄한 밤 날개짓 소리도 안 내고 먹잇감이 도망갈 틈도 주지 않는다는 사냥의 귀재 올빼미지만 지금은 소녀와 똑같이 밤하늘을 날며 사냥하면 어떤 기분일지 알지 못하는, 박제처럼 가만히 앉아 있는 새에게도.

악의없는 질문에 꼬박꼬박 답해주는 동물 앞에서 신이 났는지 소녀는 점점 대담해집니다. 높이뛰기를 잘 해서 이 미터가 넘는 바위도 훌쩍 뛰어오른다는 바바리양에게는 한 번 뛰어보지 않겠냐고 권하는가하면, 함께 집을 지키고 사는 프레리도그에겐, ‘초원의 개’라는 뜻처럼 적이 나타났을 때 뒷발로 서서 낸다는 개 짖는 소리는 어떻게 내는건지 보챕니다. 바바리양과 프레리도그의 대답은 쓸쓸하기만 합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 높이 뛰어오를 만한 곳도 없는데, 뭐. 여기는 적이 없어. 그러니 소리 낼 일도 없지.

이쯤 되면 몇 장 남지 않은 책의 한 장 한 장이 무척 무겁게 느껴집니다. 띄엄띄엄 힘겹게 대답하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펄펄 끓어오르는 ‘울분’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이미 한 김 빠지고 식어버린 ‘슬픔’을 토로하는 것 같거든요. 원망과 항의의 눈초리가 아닌, 초점없이 비어버린 눈동자는 모두 체념해버린 것 같습니다.

사실 너무 잘 알잖아요. 잘 하는 ‘너’와 잘 못하는 ‘나’를 비교하는 것보다, ‘되고 싶은 나’와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나’를 비교하는 것이 훨씬 아프다는 것을. 원인을 모르지 않지만, 어찌할 수 없게도 나다운 모습으로 살지 못하는, 자유롭지 못한 ‘지금’이 너무나 절망적이라는 것을. 덩그러니 남은 옛 절터에서 과거의 영광을 짐작하는 것 마냥, 제 자리에 있어야 할 자기 모습을 동화처럼 상상해야 하는 동물들의 심정은 정말 어떨까요.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곧 숨이 사그라들 것 같은 상태로 혼자 외따로이 있는 늑대에게, 함께 노래하고 사냥하는 너는 정말 가족이랑 함께 다니는지 묻고, 해처럼 하늘 높이 떠오르는 동물 콘도르에게 높디 높은 안데스 산맥에 둥지를 지어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소녀 때문에 늑대와 콘도르는 새삼스레 상상해봅니다. 가족이랑 함께 노래하면 쓸쓸하지는 않겠다고. 저기 해까지 날아갈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잉카 말로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란 뜻의 ‘콘도르’는 처음으로 또박또박, 모든 동물들의 마음을 담아 말합니다. 바람처럼 달리지도, 해처럼 솟아오르지도, 산 위로 바다 위로 뛰어오르지도 못하지만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동물, 인간. 너희 사람은 아주 똑똑하다고 들었어. 자연을 이해하는 능력이랑 자연을 파괴하는 능력 모두 뛰어나다고.

엄숙한 긴장감이 흐르는 마지막 장면, 비로소, 등을 돌리고 섰던 서로를 마주 봅니다. 우리 안에서, 우리 밖에서.

자, 이후엔 이젠 어떤 말을 해야 할까요? “서로를 보다”라는 책의 부제는 “동물들이 나누는 이야기”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아니라, 동물과 동물이 나누는 이야기란 뜻이죠. 사람 역시 동물의 눈에 비친 또 다른 동물이며, 이중의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우리’의 안과 밖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몰랐다’고 말하면 안 될 겁니다. 모르면 지금부터라도 알아야 하고, 잘못했다면 사과해야 할테니까요. 책을 읽고 ‘불편하고 아픈만큼’이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희망의 증거’일 것 같은데요. 박제된 자연과 포획된 생명이 얼마나 폭력 입은 것인지 절제된 글을 통해 잘 보여준 윤여림 작가는 “세상의 모든 생명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 수 있을까”하는 물음에서 작품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또, 전장에서 목숨 걸고 찍은 종군기자의 사진이나 사진보다 더 진짜 같은 세밀화 못지않게 동물들에게 감정이입 하게 만드는 그림은, “동물들의 삶을 따라 먼 곳까지, 그들의 마음속까지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라는 이유정 작가의 진심이 오롯이 느껴지기 때문일 겁니다.

모든 문제가 그렇듯 결국은 자신에게로 소급됩니다. 내가 느끼는 만큼, 느끼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만큼, 소소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변화들이 있겠지요. 불편하다고 냉큼 등을 돌리기보다는, 무섭고 두렵더라도 두 눈을 마주볼 수 있는 용기, 그게 시작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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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정글샘도서관 (☎ 055-330-2991)
최근 업데이트 :
2018-12-06 09:5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