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는 허공에서 땅 쪽으로 격렬히 꽃 피우는 방식이다. 나는 비의 뿌리와 이파리를 본 적이 없다.
일체가 투명한 줄기들, 야위어 야위어 쏟아진다. 빗줄기는 현악기를 닮았으나 타악기 기질을 가진 수생식물이다.
꽃을 피우기 위해 비에게 나비가 아니라 허공을 버리는 순간이 필요한 것, 하얀 꽃무릇 군락지가 있다고 치자. 그게 통째로 뒤집어져 세차게
나부끼는 장르가 폭우다. 두두두두두 타닥타닥타닥 끊임없이 현이 끊어지는 소리, 불꽃이 메마른 가지를 거세게 태우는 소리가 거기서 들린다.
낙하의 끝에서 단 한순간 피고지는 비꽃, 낮게 낮게 낱낱이 소멸하는 비의 꽃잎들.
그 꽃 한 아름 꺾어 화병에 꽂으려는 습관을 나는 아직 버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