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권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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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1인 독재, 당돌한 가녀장의 고뇌와 우아함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이지 사서_화정글샘도서관
독자대상 청소년 이상
서명 가녀장의 시대
저자/역자 이슬아
출판사 이야기장수
페이지수 316쪽
출판일 2022년 10월
등록일 2022년 12월 09일

1인 독재, 당돌한 가녀장의 고뇌와 우아함

예전에는 작가가 되려면 신문사 또는 출판사 등에 기고한 글이 채택되는 등단이라는 시스템을 거쳐야 되었던 것이, 요새는 그런 매체를 끼지 않고도 책을 내고 싶으면 누구나 책을 내 작가 타이틀(?)을 달 수 있다. ‘독립출판물’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개척됐기 때문이다. 독립출판서적만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서점도 있고 몇몇 도서관에서는 독립출판물 전용 서가도 두고 있다. 이렇듯 유력한 매체의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작가의 개성과 스타일이 거침없이 드러난 독립출판물이 보편성을 획득하고 대중의 인정을 받게 된 것이다. 이런 독립출판물도 참신한 작가 등용문이었지만 이보다 더 획기적인 발상을 한 이십대 여성이 있었으니, 그녀의 이름이 바로 ‘이슬아’였다. 여리하고 청초한 이미지의 이름-작가의 할아버지가 정한 작가가 사랑하는 이름-과 달리 작가 이슬아는 당돌하기 이를 데가 없었는데...

계기는 대학등록금을 다 갚기 위해 글쓰기 좋아하는 그녀가 자신의 일상 수필을 매일(주당 평일만 5일간) 신청자의 이메일로 발송하고 월구독료 1만원을 받겠다고 내 건 것이다. 그녀의 인스턴트식(?) 이메일 수필은 구독료 이상의 가치가 있었다. 구독자의 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나고 마침내 그간의 이-메일 발송 에세이 중에 좋은 작품들을 추려서 『일간 이슬아』를 책으로 낸 것이다. 매일매일 쓰는 작가의 글 모음집은 꽤나 두툼했다. 작가는 이 책에서 지식도 기술도 없는 젊은이가 자신의 파릇파릇한 젊음의 시간을 시간당 최저임금 알바라는 염가에 팔아치우는 것보다 누드모델의 길을 선택한 대범함과 영리함, 연애와 섹스 이야기, 어머니에 대한 애틋함, 가족에 대한 사랑, 친구와의 우정 등 그녀만의 시각으로 자신의 개성 넘치는 삶을 솔직하게 무엇보다 재미있게 펼쳐낸다.

『일간 이슬아』는 성공작이었다. 이 성공을 발판 삼아 아예 출판사를 차려 운영하며 작가이자 출판사 사장으로서 한 여자이자 인간으로서 성장해가고 있다. 이번에 문학동네의 임프린트-출판사 소속 편집자의 개인 브랜드- ‘이야기 장수’에서 발간한 『가녀장의 시대』는 그간 작가 이슬아가 사업가, 강연가로서 성공(?)하고 가업을 이끄는 이야기를 소설 형식의 3인칭 시점으로 거의 사실적으로 서술해주고 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 형식을 빌어 사실주의적으로 서술하는 기법은 202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아니 에르노’를 연상시킨다.)

우리시에서는 장유도서관에서 이슬아 작가의 강연을 진행한 적이 있다. 나는 그보다 한 반 년 전에 그녀를 섭외하려다가 못했는데, 이때 받은 이-메일이 참 신기했다. 당돌한 틴에이저 느낌의 젊은 작가가 쓴 섭외 거절 이메일은 지극히 정중하고도 사려 깊었다. 과연 그녀를 직접 대면한 동료 사서도 이슬아 작가에 대해 지금껏 본 사람 중 ‘가장 에티켓이 세련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책 속의 다음 대목을 읽어보면 공감이 간다.

<슬아는 강연장에 한 시간 반 전에 도착한다. 찾아오는 동선을 미리 살피고 혹시나 독자들이 헤매지 않도록 미리 안내판을 확인해둔다. 강연장의 빔 프로젝터, 마이크, 스피커 체크를 마친 뒤에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둔다. 일찍 온 독자들이 정적 속에서 강연을 기다리다가 뻘쭘해지지 않도록 말이다. 독자들의 의자에도 미리 앉아보는 편이다. 혹시나 삐걱거리거나 불편한 의자가 있으면 모두 새것으로 교체해둔다. 그리고 화장실에 가본다. 화장실에 휴지가 떨어졌을 겨우 담당자에게 연락해 채워둔다. 강연장의 조명 또한 보기 좋게 조절한다. (중략) 슬아는 강연자로서의 자신을 반쯤은 공연자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멋지게 입고 강연장에 간다._56쪽>

강연 기획자의 입장에서는 연사가 1시간도 더 전에 도착해서 담당자의 역할 이상으로 원활한 강연을 위해 사려 깊게 돌아보는 이런 과정이 거의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담당자가 미처 생각도 못 한 부분까지 다 세심하게 찾아보는 꼼꼼함은 보수적인 한국 사회의 거침없는 반항아, 돌직구를 날리는 청춘 이슬아 작가의 반전 매력이 될 수 밖에 없다.

이 책 『가녀장의 시대』 가 바로 그녀와 같다. 양쪽 모부님을 출판사 직원으로 살뜰히 부리면서 사장으로서의 권위를 발휘하는 한편, 개념 있는 고용인으로서 직원 복지혜택(상여금, 휴가 등)도 과감하게 챙겨준다. 가족의 생계를 맡고 있는 가녀장으로서 개미같이 열심히 일하다가도 문득 “젊음이 흘러가고 있어.”라고 혼잣말을 하며 속전속결 데이팅 앱을 켜고 ‘멸종 직전의 괜찮은 남자를 존나게 열심히 찾아(책 내용 일부)’ 원나잇 데이트를 하고 태연한 얼굴로 아침에 귀가한다. 이 얼마나 발랑 까진 것 같지만 발랄하며, 싸가지 없는 것 같지만 속 깊은 사람이란 말인가. 작가 이슬아 자신의 이런 모순되는 양가적 특성이 읽는 이에게 재미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일간 이슬아>에 매료된 수많은 월 구독자가 생긴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제 30대 초입에 막 들어선,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작가 이슬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유쾌하고도 참신한 한 인간상을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라. 무엇보다 읽기에 재밌다. 시간이 쑥쑥 간다. 쉬는 날 혹은 퇴근 후 무료할 때 이 책으로 유쾌한 휴먼 드라마 한 번 보시라. 자신 있게 추천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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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업데이트 :
2018-12-06 09:5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