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정기적으로 들어오는 책의 양이 적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또한 '정기적으로' 정리해야 하는 책이 있으리라는 것도 이해합니다.
프란츠 파농, 존 버거, 역사학자 주경철의 책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여행기를 파기하기로 결정을 했다면 필시 더 큰 뜻이 있었으리라 납득하려 애써 보았구요.
철학자 김영민의 절판된 책<동무론>을 구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소식이겠으나, 시립도서관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니 말하자면 더 큰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없애버렸을 거라고, 또 <번역논쟁> 같은 책은 누구도 찾지 않으리라 판단할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상실감을 달래보기도 했습니다만.
제가 포착하지 못한 더 많은 책이 사라졌을 것이고, 단언컨대 그 결정을 내린 이(들?)는 결코 책을(최소한 인문학은) 읽지 않는 사람들, 읽지 않으니 책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도 책을 읽는 사람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첨부한 사진속의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없앴을까요?
민음의 전집을 마주한 위치에서 오른쪽 책장에 있던 열린책들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은 또 어째서였을까요?
좋은 책에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이 불태워 없애기로 작정한 게 아니라면, 한꺼번에 그 많은 '추천도서'를 어떻게 도서관 책장과 목록에서 빼버릴 수 있었을까요?
기적의 도서관에 오는 어린 친구들과 청소년들이, 대출하는 방식으로만 책을 접하지 않는다는 건 관찰하신 분들이 더 잘 아실 텐데, 청소년들(학부모들께도 많이들 권장하는 도서라더군요)에게 필독서라는 세계문학전집을!!
백보 양보하여, <이탈로 칼비노 전집>이라는 이름으로 새 책을 들였으니 기존에 있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이탈로 칼비노 작품은 공간문제 때문에 파기하기로 했다고 누군가가 말할 수도 있을까요?
그렇다면, 칼비노 소설 외에 수백권의 다른 소설들은 도대체 왜??
얘기하기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이런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책이 없어지고, 목록에서 사라지는 것이 가능하다면 누군가 나쁜 마음으로 책을 빼돌릴 수도 있는 일 아니겠는지요.
도서관 규모를 감안하면 수백권은 정말 어마어마한 양이죠.
관행을 모르는 이용자의 오해라고, 정리를 위해서 어딘가에 잘 보관하고 있다는 답변을 듣고 정말 기쁜 마음으로 백배사죄하며 이 글을 내릴 수 있게 되기를.
사라진 책들의 행방을 영영 알 수 없게 된다면, 그야말로 상징적인 '분서' 사건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무려 도서관이 주도한 분서 말이지요.
그렇게 된다면......친구들의 가족이 먼 곳에서 찾아올 때 기쁜 마음으로 데려가서 아이들한테 책구경을 시켜주곤 하던 빛나는 등대 같았던 기적의 도서관은 이제 마법이 사라진 곳이 되어버릴 것 같네요.
덧붙임:
당장 구입을 할 수는 없지만, 나중에라도 정독을 해야 하는 내용이 많은 책들은 기억을 하기 위해 표지 사진을 찍어 둘 때가 있습니다. 기적의 도서관 도장이 예쁘게 찍힌 사진 몇 장을 그래서 가지고 있는데 이제는 모두 슬픈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