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가 권하는 책

우리시 도서관 사서가 추천하는 책을 소개합니다. 시민들이 좋은 책을 선택하는 안내 길잡이가 되어 독서의 재미를 안겨드리겠습니다.

인문

꽃이 될 수 없었던 소녀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서경훤(칠암도서관)
독자대상 -
서명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저자/역자 최진영
출판사 한겨레출판
페이지수 304쪽
출판일 2010.07.15
등록일 2010년 08월 17일

꽃이 될 수 없었던 소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 중에서>

불러주는 이 하나 없는 이름은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이년, 언나, 간나, 유나.. 불려질 이름은 많지만 하나의 몸짓에 불과한 소녀를 꽃으로 피워줄 이름은 아니다.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의 장편소설『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의 주인공 소녀의 이야기다. 소녀는 많은 이름으로 불리지만 진짜이름은 아무도 모른다. 제 이름도 모르는 소녀는 가출한 어머니와 폭력적인 아버지가 싫어 그들을 가짜부모로 만들어버리고 ‘진짜엄마’를 찾으러 다닌다.

가짜아빠가 172번째로 때리고 가짜엄마가 135번째로 밥을 안 주던 늦은 겨울 밤, 소녀는 가짜부모들이 길바닥에 버려진 장갑 줍듯 자신을 주워온 것이라고 확신하고 세상을 떠다니며 만난 사람들을 속에서 진짜엄마를 찾으려 한다. 황금다방의 장미언니에게서 엄마의 향기를 맡지만 ‘사랑’이 아니라 자신을 향한 동정심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소녀는 장미언니를 가짜로 치부해버린다. 갈 곳이 없는 소녀를 먹여주고 재워준 태백식당 할머니에게서 모성을 느낀다. 할머니는 친자식이 나타나 생활고에 시달리자 어쩔 수 없이 소녀를 파출소에 맡긴다. 할머니 또한 소녀에게 가짜였다. 각설이패와 함께 축제가 열리는 곳을 돌아다니며 삶의 즐거움을 느끼지만 그 시간도 그리 오래가진 못한다.

세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 소녀와 닮은 듯 비슷한 이들이다. 사회의 어두운 이면에서 힘겹게 하루하루 버티는 사람들은 소녀를 가족처럼 보살펴준다. 따뜻하게 감싸주는 그들 속에서 소녀의 몸과 마음은 성장한다. 소녀는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가짜부모와는 느낄 수 없었던 행복을 그들에게서 느끼게 된다. 그녀가 찾은 것은 ‘엄마’라는 존재 자체가 아니라 엄마의 따뜻함, 편안함이었다. 그들의 모성에 안주하고 싶었지만 소녀는 다시 길을 잃은 고양이처럼 정처 없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닌다.

진짜엄마를 찾아 헤매는 소녀는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울지도 않는다. 오히려 당당해 보인다. 까칠한 가출소녀이지만 아직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순수함이 있다. 이런 소녀의 모습은 독자로 하여금 동정심보다 유쾌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엄마를 찾아 행복해 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에 소녀의 방황은 흥미롭다.

손바닥만 한 사진이 있었다. 그 속엔 젊은 아빠 엄마가 있다.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엄마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천사처럼 웃는다. 아빠의 얼굴엔 부끄러움과 만족감이 사이좋게 내려앉았다. 맑고 밝은 향기로운 봄날. 그 속엔 나도 있다. 엄마 배속에서 작은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입을 하나로 모은 나. 평화야. 엄마가 배에 손을 얹고 나를 부른다.(294)

하나의 몸짓이었던 소녀가 꽃이 되었던 순간이 있다. 엄마가 소녀를 ‘평화야’ 라며 불러주었을 때다. 소녀는 순간 엄마의 따뜻함을 느꼈다. 엄마의 뱃속에서의 평화로움을 기억하는 소녀는 항상 그 곳을 그리워한다. 현실에서 꽃이 되지 못한 소녀는 그리운 곳을 향해 사라진다.

최진영 작가는 완전한 평화란 엄마 뱃속처럼 아무런 간섭하지 않는 어둡고 고요한 세계에서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평화가 현실에서 가능하겠냐는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해서 꿈마저 꾸지 않을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반문한다. 소녀가 찾는 ‘진짜엄마’는 세상에 없다. 하지만 소녀는 행복해지는 ‘꿈’을 가지며 진짜엄마를 찾아다닌다. 꿈을 이루는 과정은 결과보다 더 밝은 빛을 발하게 된다. 소녀는 꿈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진짜엄마를 찾는 여정 속에서 “키도 조금 자라고 머리카락도 많이 길고 그리고 , 무언지 모를 어떤 것이 불쑥 자랐다”고 말한다. 소녀의 짧지만 긴 여정 속에서 한줄기 희망을 엿보길 바란다.



만족도 조사

현재 열람하신 페이지를 평가해 주세요.

평가:
담당부서
김해율하도서관 (☎ 055-340-7161)
최근 업데이트 :
2018-12-06 09:5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