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으로 유명한 일본의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신작 중 하나인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에는 살인사건도, 탐정도, 범인도 나오지 않는다. 대신 고민(고민은 일본어로 나야미(なやみ)이며, 이 단어가 가게 이름과 비슷한 것이 사람들이 주인에게 고민을 털어놓게 되는 계기가 된다)을 넣는 우편함과 주인이 답장을 넣어주는 우유 상자가 있는 낡은 잡화점이 있다.

잡화점 주인이 사람들과 고민을 주고받던 나날들에서 30여년 후,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이 낡은 가게에 강도짓을 저지르고 경찰을 피해 달아나던 삼인조 좀도둑들이 숨어든다. 그저 하룻밤 지낼 장소를 찾던 이들의 앞에 시대를 초월한 고민 상담 편지가 도착한다. 올림픽 경기 참가와 죽음을 앞둔 연인의 병간호 사이에서 고민하는 편지 속 여성에게 반쯤은 장난삼아 답장을 쓰기 시작하면서, 좀도둑들은 이 편지가 놀랍게도 과거에서 온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들은 미숙하고 서툰 청년들이고, 타인의 고민 따위에는 무관심하지만 여성과 편지를 여러 번 주고받으면서 마지막에는 여성도, 그리고 자신도 만족할 수 있는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걸 깨달은 순간 그들의 마음 속에는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감정이 피어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 밤 처음으로 남에게 도움 되는 일을 했다는 실감이 들었어. 나 같은 게. 나 같은 바보가.” (p. 330)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고민 상담은 남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귀담아 듣고,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공감하여 걸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일 것이다. 이 경우 고민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특정 분야의 전문가이거나, 혹은 인생을 오래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연륜을 쌓은 인물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작가는 오히려 객관적으로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는 ‘좀도둑’ 3인방을 화자로 내세우면서 천편일률적인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 발을 디딘 생생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러다보니,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음악가 지망생에게 “이런 사치스러운 고민을 들려주시다니, 참 고맙군요.”로 시작되는 백수의 설움이 물씬 느껴지는 폭언을 내뱉는, 전혀 고민 상담자답지 않은 면모도 보이게 되지만 말이다.

이후 소설은 30년 전 다양한 삶을 살아가던 이들의 고민을 별개의 스토리로 들려주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연이 ‘나미야 잡화점’을 중심으로 교차함으로써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되는 구조로 전개된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실제로 ‘나미야 잡화점’이 있다면 좋을 텐데, 그리고 그렇다면 “나는 어떤 질문을 할까?”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고민을 다른 사람에게 상담하는 것도 사실상 상당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게 내키지 않을 수도 있고, 소설 속에도 나오지만 사람들은 사실 자신이 원하는 결론과, 실제로 맞다고 생각하는 결론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의지나 환경 등 여러 이유로 외면하면서 살아간다. 쉬운 길로 가고 싶은데 그냥 가기에는 자신이 너무 나약한 거 같고,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게 의지해서 그 사람이 이렇게 해라, 라고 하면 그걸 핑계삼아 그 길로 가고는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남탓을 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여린 마음도 어루만지면서, 살다보면 한 번쯤은 마주하게 되는 어려운 선택의 문제에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전하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은 마음 한 구석에 ‘고민’을 안고 사는 현대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혼자 끙끙 앓고 있을 때는, 어딘가에 자신의 이야기를 온 마음을 다해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