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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여행-'시간의 점'을 얻는 기회

상세 내용 글쓴이, 독자대상, 서명, 저자/역자, 출판사, 페이지수, 출판일, 등록일
글쓴이 강치원
독자대상 -
서명 여행의 기술
저자/역자 알랭 드 보통
출판사 이레
페이지수 354쪽
출판일 2004.07.26
등록일 2010년 08월 10일

여행-'시간의 점'을 얻는 기회

여행을 떠난다. 짓누르는 일상으로부터 탈출해야 한다. 여행지에 대한 기대에 한껏 들떠서 출발한다. 짧은 여행 일정. 첫 휴가를 나온 이등병이 귀대할 날짜를 세는 것처럼 떠나면서 돌아올 날부터 생각한다. 일상과는 달라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긴다. 그저 놀고 먹고 마시고 자다가 돌아온다. 흘러 가버린 시간이 아쉽다. 가슴이 답답하다. 한 번만 더 여행을 떠나고 싶다. 일상이 삶을 더욱 옥죈다. 떠났지만 단 한 발자국도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더듬이를 잃어버린 채 제자리에서 맴도는 개미같다. 당신이 올 여름 보낸 휴가 여행이 이와 같지는 않았는지?

우리가 원하는 여행은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공간으로의 이동이다. 일상에서는 도무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이상적인 곳으로 가고 싶다.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내 기억 속에서 그 여행을 생각할 때마다 영혼의 힘을 얻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월리엄 워즈워스가 "시간의 점"이라고 불렀던 그런 곳으로의 여행 말이다.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이 힘으로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땐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210p)

"시간의 점"으로 여행하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이하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펼쳐보자. 보통은 여행에 관한 일반적인 책에서 다루는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 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가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여행을 "가야 하는 이유와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쏟아놓고 있다.

"우리가 여행으로부터 얻는 즐거움은 여행의 목적지보다는 여행하는 심리에 더 좌우될 수도 있다."(334p)

<여행의 기술>은 출발, 동기, 풍경, 예술, 귀환의 다섯 편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부 9개의 소주제에 "대하여" 이야기가 펼쳐진다. 소주제마다 보통이 소개하는 인물들을 만나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를테면 '여행을 위한 장소들에 대하여'에서는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가, '호기심에 대하여'에서는 독일 자연과학자, 알렉산더 폰 훔볼트가, '시골과 도시에 대하여'에서는 영국 시인, 월리엄 워즈워스가, '눈을 열어주는 미술에 대하여'에서는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아름다움의 소유에 대하여'에서는 영국의 미술평론가이자 사상가, 존 러스킨이 등장한다. 이들로부터 일상을 허무는 <여행의 기술>을 배우고 지친 영혼을 소생시킬 "시간의 점" 하나 정도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보통이 "우리에게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말해 주고자 하는 <여행의 기술>은 무엇일까? 보통이 소주제마다 등장시키는 인물들은 어떤 <여행의 기술>을 알려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술은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하는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관계를 재구성하고,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상을 재발견하는 기술에 대해 귀뜸하고 있다. 반복적이고 단조로운 일상이 싫어서 여행으로 가슴에 숨통 하나 뚫어볼까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소리?"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여행의 기술>을 여행한다 생각하자. 여행자가 가지는 제일 큰 특징 "수용성"을 가지고 "겸손한 마음으로" 보통의 말을 들어보면 꽤나 설득력이 있다. 더군다나 소주제마다 등장하는 저명한 안내자들은 정말이지 신뢰할만하지 않은가?

그 기술들 중 몇 가지를 살펴보자. 첫째,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에 대한 이해, 사랑, 존경 같은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그런 전제하에서만 여행지의 그림같은 풍경도 마음 편히 누릴 수 있다. 둘째, 여행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아도 가는 동안에 만나는 장소와 풍경, 즉 우리가 눈길도 주지 않았던 휴게소, 공항, 비행기, 배, 기차 등을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시(詩)를 발견해 낼 수도 있다. 마치 호퍼가 호텔, 주유소, 식당 같은 것에 일관된 관심을 보이며 명화(名畵)를 남긴 것처럼. 셋째, '여기'를 재발견 해내야 한다. 월리엄 워즈워스는 레이크디스트릭스에서 거의 평생을 보냈다. 그는 레이크디스트릭스에서 일상의 사물과 자연에 매력을 부여함으로써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농촌의 아름다움과 경이를 발견케 시를 써냈다. 워즈워스가 레이크디스트릭스를 작품 속에서 재발견해내지 않았더라면 그곳은 여전히 누군가가 재발견해주기를 바라는 풍경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 넷째, 자신의 방식으로 일상을 다시 보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는 "화가는 세상의 한 부분을 그릴 수 있고, 그 결과 다른 사람들이 그것에 눈을 뜨게 해 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림을 그렸다. 그는 다른 화가들이 보는 방식을 버리고 같은 대상을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창조해냈다. 지금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고흐가 그려낸 사이프러스 나무, 올리브 숲, 아를의 한 모퉁이를 보기 위해 아를을 방문한다. 고흐가 자신의 방식으로 그려낸 일상이 관광객들에게는 "시간의 점"이 되고 있다.

보통은 우리가 일상에 대해 눈을 감고 있는 이유는 오랜 세월 살아온 곳에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국 여행의 의미는 일상의 재발견에 있다. <여행의 기술> 끝부분에 여행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보통 자신도 일상에 대해 눈을 뜨기 위해 노력한다. 전에 와본 적이 없는 것처럼 주위를 둘러 본다든지, 창문 스케치를 해본다든지, 고가횡단도로에 대한 글쓰기를 해본다든지. 여행지에서 일상을 풍요롭게 할 기술을 배워오려거든 <여행의 기술>을 가방에 챙겨 넣자.

비행기를 타고 구름 위로 올라가면 넓은 지상이 아래에 펼쳐진다.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지만 그 순간, 인생을 먼 곳에 두고 조망하며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다. 인생이 여행이라면 누구라도 반드시 <여행의 기술>을 배워야 한다. 인생의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지금, 여기의 시공간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다음, 거기의 시공간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척박한 일상을 잘 관리함으로써 풍성한 열매가 열리는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 수 있다고한 니체의 말이 일상에서 졸고 있던 모든 정신에 한 바가지 얼음물처럼 쏟아진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들어내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34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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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2-28 09:09:38